[뉴스] [민준구의 타임머신] “팬이 있기에 선수가 있다” KBL의 팬 서비스 역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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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민준구의 타임머신] “팬이 있기에 선수가 있다” KBL의 팬 서비스 역사①

스포츠중계티비 0 33 06.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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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팬이 있기에 선수가 있다.”

1997년 한국농구연맹(KBL) 출범 후, 팬 서비스에 대한 이해는 시간을 거슬러 점점 변해 갔다. 한국농구 최대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농구대잔치’ 시절, 마땅한 팬 행사 없이도 스타 선수들은 수천 통의 팬레터를 받아갈 수 있었다. 그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떨어지는 인기도, 스타급 선수들이 자취를 감춘 현재, KBL의 팬 서비스는 점점 진화해 나가고 있다.

농구대잔치 세대로 구성된 KBL 초창기 시절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이상민, 우지원, 김훈, 전희철 등 미남 스타들은 여전히 ‘오빠부대’를 이끌었고, 농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당시 팬 서비스는 단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팬 사인회만 열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선수들 역시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다.

이흥섭 원주 DB 홍보차장은 “프로 초창기만 하더라도 팬 사인회 개념의 행사가 많았다. 지금처럼 다양하고 빈번하게 행사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더 많았던 것 같다. 농구대잔치 시절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사인회 위주였어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이야기했다.

2000년대 초, 신인 선수였던 은희석 연세대 감독 역시 “당시에는 팬 서비스라면 무조건 사인회였다. 여러 군데에서 불러줬고, 선수들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쉬고 싶은데 억지로 나가는 선수들도 있었다(웃음). 그래도 그만큼 농구의 인기가 많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팬 사인회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김성태 KBL 운영팀장은 “지금 이야기하는 팬 사인회와 규모 자체가 달랐다. 그때는 선수들과 팬들의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지금은 미디어의 발전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선수들의 얼굴 한 번 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고, 농구에 대한 사랑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규섭 삼성 코치는 “지금은 팀 단위로 팬 사인회를 많이 하지만, 예전에는 선수 개개인별로 부탁을 받았다. 사실 농구대잔치 시대와 지금의 인기도를 비교하는 건 힘든 일이다. 스폰서 계약도 활발했고, 그에 따른 사인회도 정말 많은 시기였다. 아무래도 우리를 찾는 이들이 많으니 그랬던 것 같다. 하루에 두 번씩 행사를 다닌 적도 있어 힘들기는 했다(웃음). 그래도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팬 서비스의 방식이 팬 사인회 위주로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1997년 2월, 광주 나산의 선수단은 단체로 염색을 하는 등 팬들에게 자신들을 어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고 지역 내에 행사를 꾸준히 열며 진정한 프로 스포츠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KBL 역시 스타 선수들을 활용해 많은 행사를 열었다. 물론 팬 사인회가 주를 이루는 등 단순한 행사가 지배적이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현식 KBL 홍보팀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15608261629696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올스타전 팬 사인회는 우리의 핵심 홍보 행사였다. 물론 지금처럼 다양한 행사가 있지는 않았지만, 팬들에게 KBL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며 “시대 흐름에 따라 팬 서비스적인 방법이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일부 선수들의 불성실한 태도는 팬들은 물론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한 농구 관계자는 “지금 선수들은 정말 순둥이들이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과거 몇몇 선수들은 귀찮다는 내색을 팬들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요즘 야구가 팬 서비스 문제로 말이 많지 않나. 과거 농구도 그랬다. 어떤 선수는 올스타전 전날, 술 냄새를 풍기며 코트에 나오기도 했다. 힘들어도 팬들 앞에서는 웃음을 보이는 지금 선수들과는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구 관계자는 “우지원, 김훈, 김주성, 양동근 등 내가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팬들의 관심을 감사히 여겼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팬 서비스에 대한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불만을 겉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으면, 참고 넘기는 이도 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많이 좋아졌다. 팬 서비스 문화가 성숙해졌기 때문이다”라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KBL 역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점점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노쇠화를 겪고 있었고,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얼굴들이 나오지 못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때부터 KBL 및 각 구단들의 팬 서비스 방식은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 그동안 선수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던 팬 서비스가 진정한 의미로 팬들에게 다가가게 된 것이다.

김성헌 인천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과거 초창기 시절에 팬 서비스 문화가 구단이나 선수들에게 수동적인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나 2000년대 중반에는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시 되는 문화로 바뀌었다 할 수 있다(물론 선수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예전에는 성적이 우선, 팬 서비스는 이후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도자들도 ‘팬들이 먼저다’라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 것이다. 팬 사인회 위주에서 벗어나 연고 지역 내 학교, 팬들에게 직접 다가가 홍보하는 것 역시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황금 세대’라고 하는 2000년대 중후반 선수들 역시 직접 팬 관리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점점 발전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꽃을 피우는 것 같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과도기였던 2000년대 중반을 지난 KBL 및 각 구단들은 서서히 팬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수 위주에서 팬 위주로 흐름이 바뀌면서 마케팅의 발전이 이뤄졌고, 팬 서비스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 역시 달라졌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KBL의 팬 서비스 역시 단계를 거치며 점점 더 발전해 나가고 있다. 수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팬 서비스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②편에서 계속...

# 사진_KBL 제공


  2019-06-18   민준구(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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